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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기념일 우리가 알아야 한다

오늘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기념일이다.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일제치하의 우리 조상들이 독립을 위해 싸운 역사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일제 치하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조상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임시정부를 알아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일본의 대한제국 침탈과 식민통치를 반대하고 우리나라 내외부에서 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만든 망명정부이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해산되었기는 하나 이때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 헌장을 근간으로 국호 대한민국과 민주공화국이 확립되었다.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고 김구, 이승만, 박을식, 박은식으로 수반 이어졌다.

대한민국 국호의 제정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고종이 만든 대한제국이라는 국호에서 유래하였다. 처음에 국호를 정하는 임시정부 임시 의정원 회의에서 대한민국,  조선공화국, 고려공화국 등이 제안되었는데 대한"제"국이라는 황제의 나라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민(백성)의 나라로 바꾸는데 동의한 것이다.

임시정부의 이동 경로

임시정부는 수립 이후 숱한 혼란을 겪으며 1919년 상하이, 1932년 항저우, 1937년 난징, 우한 그리고 11월 창사, 1938년 광저우, 1938년 류저우, 구이양, 그리고 1939년 차장을 거쳐 드디어 1940년 충칭에 자리를 잡았다. 충칭에서는 1945년 11월 23일까지 머물게 된다. 충칭(중경)은 중국국민당 정부의 임시수도이기도 하였다.

임시정부의 활동

임시정부는 숱한 고난 속에서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의거를 통해 일본군 고위직을 암살하였다. 충칭에 안착한 이후로 1940년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한국괌복군 총사령부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총사령에는 지청천 그리고 참모장에 이범석이 임명되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지청천 장군의 한국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부터 통수권을 인수하여 활동하였다. 미국 CIA와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하였다. 광복군은 육군으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대한민국 국군의 모태가 되었다.

미완의 친일청산

돌이켜 보면 가장 아쉬운 것은 힘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친일파들을 제거하지 못한 것은 민족의 천추의 한이 된다. 일제 순사가 그대로 경찰이 되고 친일고위공직자가 해방된 대한민국에서도 떵떵거리고 사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오히려 독립투사의 자손들이 힘들게 사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프랑스가 나치에 부역한 반역자들은 철저하게 찾아내어 그리고 가혹하게 처벌한 것은 매우 본받을 일이다. 조국을 배신한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보복함으로써 모든 국민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우고 반역은 곧 죽음임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유지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정 #친일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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